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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면서 느낀 ‘엄마’와 ‘나’의 거리(Distance)

by 두리안2025 2026. 4. 2.

아이를 낳은 이후 ‘엄마’라는 이름은 자연스럽게 나를 설명하는 가장 앞의 단어가 되었다. 하루의 대부분이 아이를 중심으로 흘러가다 보니, 그 역할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그런데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이상한 감각이 생겼다. 익숙하던 ‘엄마’라는 정체성과, 공부하는 ‘나’ 사이에 미묘한 거리감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거리는 낯설었지만 동시에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녁에 공부하는 나

 

 

1. ‘엄마’로 충분한 하루와, 어딘가 부족한 감정

아이와 함께 보내는 하루는 분명 충분했다. 해야 할 일도 많았고, 감정적으로도 꽉 차 있는 시간이었다. 아이의 작은 변화에 기뻐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며 하루를 보내다 보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면 분명 많은 것을 해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밤이 되면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남아 있었다.

그 공허함의 이유를 바로 알 수는 없었다. 아이와의 시간은 분명 의미 있었고, 스스로도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만으로 충분한가’라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그 질문은 죄책감을 동반했다. 엄마로서의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감정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는 신호에 가까웠다.

공부를 시작한 이후, 그 감정의 정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로서의 하루는 타인을 위한 시간이었다. 반면 공부하는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지 못했을 때, 하루는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엄마’로 충분한 하루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 부족함은 역할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과의 연결이 끊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2. 공부를 시작하자 보이기 시작한 ‘나’라는 존재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낯섦이었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감각을 다시 꺼내는 느낌이었다. 집중하고, 이해하고, 기억하는 과정이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각은 점점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잊고 있던 ‘나’라는 존재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이를 돌보는 시간에는 대부분의 판단 기준이 ‘아이에게 좋은가’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공부를 할 때는 기준이 달랐다.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어떻게 시간을 사용할지, 어떤 목표를 세울지는 모두 나의 선택이었다. 이 단순한 변화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결정하고 행동하는 경험이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느껴진 것은 해방감에 가까웠다. 엄마라는 역할이 나를 제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나’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공부를 통해 그 비중을 다시 늘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공부는 단순한 자기계발이 아니라, 나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거리감도 더 선명해졌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의 나와, 공부할 때의 나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말투도, 생각의 방향도 달라졌다. 그 차이는 때로는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점점 받아들이게 되었다. 둘 중 하나가 진짜가 아니라, 둘 다 나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3.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찾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엄마’와 ‘나’ 사이의 거리감이 낯설고 불안하게 느껴졌다. 마치 두 가지 역할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집중해야 하는 시간과, 나를 위해 쓰고 싶은 시간이 겹칠 때면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에 대한 미안함이 따라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거리감의 의미를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엄마’라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해 있던 상태에서, ‘나’라는 축이 다시 생겨난 것이었다. 두 가지가 분리되어 보였던 것은, 그동안 하나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균형이 생기자 오히려 두 역할 모두 더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나를 위한 시간이 확보되자,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도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무의식적으로 느껴지던 답답함이나 피로감이 줄어들었다. 나 자신이 채워져야 다른 사람에게도 더 잘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결국 ‘엄마’와 ‘나’의 거리감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명확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두 가지 역할이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거리감은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