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러나 육아를 하거나 바쁜 일상을 보내는 사람에게 그 24시간은 결코 하나의 덩어리로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잘게 쪼개져 있고, 예측할 수 없으며, 자주 끊긴다. 그래서 더 이상 “시간이 날 때 공부해야지”라는 말은 의미가 없었다. 공부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쪼개진 시간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일이었다. 그 방식이 익숙해지기까지는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결국 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게 되었다.

1. 완벽한 시간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던 순간
과거의 나는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일정한 조건이 필요했다. 조용한 환경, 충분한 시간, 그리고 방해받지 않는 집중 상태였다. 그러나 그런 조건은 현실에서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 특히 육아를 하며 보내는 하루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완벽한 시간을 기다리는 한, 공부는 시작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준을 바꾸기로 했다. 1시간이 아니라 10분, 30분이 아니라 5분을 기준으로 삼았다. 짧은 시간이라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았고, 중간에 끊기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반복될수록 짧은 시간에도 몰입하는 힘이 생겼다.
완벽한 조건은 필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이었다. 이 생각의 전환은 공부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었고, 동시에 실행력을 높여주었다. 쪼개진 시간은 불완전했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더 자주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2. 공부의 단위를 잘게 나누었던 전략
쪼개진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공부 자체도 달라져야 했다. 이전처럼 긴 호흡으로 한 번에 많은 내용을 소화하려고 하면, 금방 흐름이 끊겼다. 그래서 나는 공부의 단위를 의도적으로 작게 나누기 시작했다.
한 챕터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한 페이지를 읽는 것을 목표로 했다. 강의를 한 시간 듣는 대신, 10분짜리 구간으로 쪼개어 들었다. 중요한 개념 하나만 이해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기준을 낮추자, 시작이 훨씬 쉬워졌다.
또한 중단을 전제로 공부를 설계했다. 언제든 끊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이어갈 수 있도록 표시를 남겼다. 메모를 남기고, 다음에 할 내용을 미리 정리해두었다. 덕분에 짧은 시간이 주어졌을 때 바로 이어서 공부할 수 있었다.
공부의 단위를 줄인다는 것은 단순한 편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쪼개진 시간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 방식을 통해 나는 공부를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로 바꾸게 되었다.
3. 흐름보다 반복을 선택했던 이유
쪼개진 시간 속에서는 하나의 흐름을 길게 이어가는 것이 어려웠다. 대신 나는 반복을 선택했다. 짧게 여러 번 접하는 것이, 한 번 길게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나누어 보는 방식은 처음에는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번에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부담이 줄어들었고, 자연스럽게 복습이 이루어졌다.
또한 반복은 심리적인 부담을 낮춰주었다. “다시 보면 된다”는 생각은 시작을 훨씬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쪼개진 시간 속에서 중요한 것은 깊이보다 지속이었다. 그리고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반복이었다.
결국 나는 공부의 기준을 바꾸게 되었다. 얼마나 오래 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이어갔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쪼개진 시간은 한계를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꾸준함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